AI 시대 언러닝 (관계자본, 리러닝, 비전판매)
AI가 모든 정보를 즉시 답할 수 있는 시대에, 제가 10년 넘게 쌓아온 지식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요? 솔직히 이 질문 앞에서 한동안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접한 '언러닝(Unlearning)'이라는 개념이 제 시선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제가 옳다고 믿어온 낡은 전제부터 버려야 한다는 거였죠. 이 글에서는 AI 시대에 진짜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가 간호사에서 마케팅 대행사 대표로 전환하면서 체감한 언러닝의 과정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AI 시대, 지식보다 관계자본이 프리미엄 자산인 이유
예전에는 '많이 아는 사람'이 경쟁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ChatGPT에게 물어보면 몇 초 만에 전문가 수준의 답변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자본(Relational Capital)이란 단순히 인맥이 넓다는 뜻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읽고, 그것을 엮어내는 능력'을 뜻합니다. 저도 처음엔 이 개념이 낯설었는데, 제 업무에 대입해보니 명확해졌습니다.
난임센터에서 일하면서 저는 환자 한 분 한 분의 선택 이유를 매일 목격합니다. 왜 이 병원을 선택했는지, 왜 시술 중간에 이탈하는지, 어떤 감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오는지 — 이 모든 맥락이 제 머릿속에 쌓여 있습니다. AI는 통계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지만, 환자가 상담실 문을 열기 전 복도에서 망설이던 그 3초의 감정은 읽지 못합니다. 바로 이 맥락 설계 능력이 제가 마케팅을 할 때 다른 대행사와 차별화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실제로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자료에 따르면(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AI 대체 위험이 낮은 직무일수록 '맥락 이해'와 '관계 설계' 역량이 높게 요구된다고 합니다. 단순 지식 전달은 AI가 압도하지만, 그 지식을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연결할지 설계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저는 이걸 '임상 경험이 곧 마케팅 자산'이라는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언러닝-리러닝-뉴러닝, 3단계로 나를 업데이트하는 법
언러닝은 그냥 '새로 배우자'는 게 아닙니다. 먼저 기존의 낡은 공식을 버리는 과정, 즉 언러닝(Unlearning)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 본질을 다시 정의하는 리러닝(Relearning), 마지막으로 새로운 기술과 통찰을 엮는 뉴러닝(New Learning) 순서로 진행됩니다. 저한테 이 3단계는 정말 뼈아픈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마케팅을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간호사가 무슨 마케팅이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내 직장에서 하는 일이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지'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던 거죠. 이게 바로 제가 버려야 할 첫 번째 전제였습니다. 언러닝의 핵심은 '내가 옳다고 믿어온 것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저는 간호사 경력이 마케팅에 도움이 안 될 거라는 프레임을 먼저 깼습니다.
다음은 리러닝 단계입니다. 마케팅의 본질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마케팅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들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임상 경험은 오히려 최고의 자산이었습니다. 환자의 불안, 의료진의 한계, 병원의 커뮤니케이션 공백 — 이 모든 걸 현장에서 체득한 사람이 마케팅을 설계하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 언러닝: 기존 상식과 공식을 의심하고 버리기 (예: 간호사는 임상만 해야 한다는 프레임 깨기)
- 리러닝: 본질을 다시 정의하기 (예: 마케팅의 본질 = 상대방의 약점 보완)
- 뉴러닝: 새로운 기술과 통찰을 엮기 (예: 임상 경험 + 디지털 마케팅 툴)
마지막 뉴러닝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단계입니다. 저는 하루 2시간씩 디지털 마케팅 툴을 공부했습니다. 약 3년간 지속하니 4년제 전공 과정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3년'이라는 시간입니다. 어떤 문화나 업무에 적응하고 신뢰를 쌓는 데는 최소 3년이 필요하다는 걸 몸소 느꼈습니다.
90%의 상식을 버리고 10%의 금기에서 기회 찾기
비즈니스 전략의 90%는 이미 낡은 것입니다. 모두가 아는 방법은 이미 레드오션이죠. 진짜 기회는 남들이 '안 된다'고 하거나 금기시하는 나머지 10%의 영역에 숨어 있습니다. 저한테 그 10%는 바로 '간호사가 병원을 컨설팅한다'는 것 자체였습니다.
처음엔 정말 막막했습니다. 병원 마케팅 업계에서 간호사 출신은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니, 제가 가진 임상 맥락 자체가 희소성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마케팅 대행사는 병원을 '클라이언트'로만 보지만, 저는 그 안에서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환자 동선, 의료진 커뮤니케이션 방식, 상담실 분위기까지 — 이런 디테일은 외부인이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실제로 제가 제안서를 쓸 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환자 여정 지도(Patient Journey Map)'입니다. 환자가 첫 검색부터 예약, 방문, 시술, 사후 관리까지 어떤 감정 변화를 겪는지 단계별로 설계합니다. 이건 임상 경험 없이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콘텐츠입니다. 남들이 '간호사가 마케팅을 해?'라고 의아해하던 그 지점이, 결국 제 차별화 포인트가 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제 확신을 밀고 나간 것입니다. 90%의 안전한 길이 아니라, 20% 확률의 금기 영역에 과감히 뛰어든 거죠. 물론 처음엔 비난도 많이 들었습니다. '난봉꾼'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가치관이 명확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비전을 팔 때 비로소 주도권이 생긴다
비즈니스의 본질은 상대방(의사결정권자, Decision Maker)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들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물건'이 아니라 '비전'을 팔 때 비로소 주도권이 생긴다는 말이 정말 와닿았습니다. 솔직히 비전 판매는 정말 어렵습니다. 저도 아직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병원에 마케팅을 제안할 때, 처음엔 '광고비 대비 예약 증가율' 같은 숫자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결국 '물건'을 파는 방식이었습니다. 병원 원장님들이 진짜 원하는 건 단순히 예약 숫자가 아니라, '우리 병원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로 각인되길 원하는가'였습니다. 이게 바로 비전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최근 제안한 프로젝트는 '난임 환자를 위한 감정 케어 콘텐츠 시리즈'였습니다. 당장 예약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환자들이 '이 병원은 나를 이해해주는구나'라고 느끼게 만드는 장기 전략이었죠. 원장님께 이 비전을 설명할 때, "3개월 뒤가 아니라 3년 뒤 우리 병원의 브랜드 이미지를 설계하는 겁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원장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비전을 공유하는 순간, 저는 단순한 '대행사'가 아니라 '파트너'가 됐습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 소비자의 병원 선택 기준에서 '감정적 신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의료 기술이 좋다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환자가 '이 병원은 나를 이해한다'고 느낄 때 비로소 장기 신뢰가 형성됩니다. 이게 바로 AI가 절대 대체 못 하는 자산입니다.
언러닝은 한 번에 끝나는 과정이 아닙니다. 제가 지금도 계속 제 전제를 의심하고, 새로운 맥락을 설계하려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건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버리고 다시 배우는 사람'입니다. 저도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하루 2시간씩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3년 뒤 제 모습을 그리며 지금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당장 자신의 낡은 전제 하나를 의심해보세요. 그게 언러닝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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